고혈압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앓고 있는 대표적인 만성 질환입니다. 특히 국내에서도 중장년층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고혈압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잘못된 상식을 믿고 치료를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고혈압이 별다른 자각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혈관과 장기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고혈압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와 잘못된 습관, 그리고 정확하고 과학적인 관리 방법을 통해 건강한 혈압을 유지하는 실질적인 방법을 소개합니다.
고혈압은 증상이 없으면 괜찮다?
가장 흔한 고혈압 오해 중 하나는 “어지럽거나 머리가 아프지 않으면 고혈압이 아니다”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고혈압은 실제로 '조용한 살인자(Silent Killer)'로 불릴 만큼 증상이 거의 없는 질환입니다. 혈압이 높아도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며, 심지어는 180/110mmHg 이상의 고혈압 상태에서도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미루면 뇌졸중, 심부전, 신장질환 등 치명적인 합병증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정상 혈압은 수축기 혈압이 120mmHg 미만, 이완기 혈압이 80mmHg 미만입니다. 130/80mmHg 이상부터는 고혈압 전단계로 분류되며, 140/90mmHg 이상이면 고혈압으로 진단됩니다. 고혈압은 만성적으로 혈관 내벽에 지속적인 압력을 가하게 되며,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혈관의 탄력을 떨어뜨리고 심장을 포함한 각종 장기에 과부하를 유발하게 됩니다.
한편, 일부 사람들은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만 혈압이 일시적으로 오르므로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면 고혈압'이나 '일시적 상승'도 방치할 경우 실제 고혈압으로 이행될 수 있으므로 정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수입니다. 최소 일주일에 3회 이상 혈압을 측정하고,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나트륨 줄이기만 하면 혈압이 내려간다?
고혈압 환자에게 가장 먼저 권장되는 것이 '짜게 먹지 말라'는 조언입니다. 나트륨이 혈압 상승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나트륨 섭취 권장량을 2,000mg 이하(소금 5g)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섭취량은 이보다 두 배 이상 높아, 국, 찌개, 라면, 김치 등 일상 음식에서도 나트륨을 과다 섭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나트륨만 줄인다고 혈압이 정상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혈압은 유전, 스트레스, 운동 부족, 과음, 비만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되며, 생활습관 전체를 개선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특히 정제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은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고, 이는 다시 혈압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식단을 개선할 때는 'DASH 식단(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이 추천됩니다. 이 식단은 과일, 채소, 통곡물, 저지방 단백질, 저염식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많은 연구에서 혈압 강하 효과가 입증되었습니다. 또한 고칼륨 식품(바나나, 아보카도, 시금치, 고구마 등)을 섭취하면 나트륨 배출을 촉진하고 혈압 조절에 도움이 됩니다. 단, 만성 신장질환 환자의 경우 칼륨 섭취는 주의해야 하므로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운동 또한 혈압 관리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꾸준한 유산소 운동(빠르게 걷기, 자전거, 수영 등)은 혈관을 확장시키고, 심장 부담을 줄이며 체중 감량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하루 30분, 주 5회 정도의 운동을 생활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혈압약은 되도록 늦게 먹어야 한다?
“한 번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니까 늦게 시작하자”는 인식은 고혈압 환자 사이에서 여전히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건강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고혈압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혈관 손상이 누적되며,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장기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혈압약은 혈압을 낮추는 것뿐 아니라, 심장, 신장, 뇌혈관 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고혈압 환자에게 적절한 시기에 약물치료를 시작하면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을 30~40% 이상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특히 고혈압 외에 당뇨, 고지혈증, 흡연 등의 위험 요소가 있는 경우에는 조기 약물 치료가 더욱 중요합니다.
현재 사용되는 고혈압 약물은 다양하며, 이뇨제, 칼슘채널 차단제(CCB), ACE 억제제, ARB 계열 등이 있고, 각 환자의 상태에 맞게 1~2종을 병용하여 복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초기에 약물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최근 개발된 약물들은 부작용이 적고 장기간 복용해도 안전성이 입증된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약을 복용하면서도 식단, 운동, 체중 조절 등을 함께 실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부 환자는 생활습관 개선으로 혈압이 안정되면 약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자의로 판단하지 말고 반드시 의사의 평가에 따라 조정해야 합니다.
고혈압은 현대인이 가장 흔히 겪는 질환이지만, 관리에 실패하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증상이 없다고 방심하지 말고, 정기적인 혈압 측정과 조기 진단을 통해 위험요인을 사전에 관리해야 합니다. 나트륨을 줄이는 것을 넘어, 전체 식단과 운동 습관, 스트레스 관리, 수면 패턴까지 포괄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며, 필요할 경우 약물 치료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병행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조용히 우리 몸을 공격하는 고혈압과 싸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점입니다.